나는 아직 '가짜' 박사다.

7:03 AM

2009년 7월 박사 1년차. DAAD-NRF 대학원생하계연수 프로그램으로 처음 독일에 왔다. 뮌헨공대에서 두 달동안 지내는 동안 아무도 나를 지도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밥먹으러 가자는 사람도 없었다. 타지에서 두 달동안 없는 사람 취급 당하니 참 서러운 마음에 연구는 커녕 방황만 하다가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의 박사 생활은 하루 12시간 넘게 해도 모자란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고 싶던 연구는 커녕 해야만 하는 일들의 폭우속에서 허우적대던 중에 2011년 9월 유럽 ERASMUS 프로그램으로 두 번째 독일에 왔다. 일년 반 동안 온전히 개인연구만을 위해 주어진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지속적으로 집중해서 하는 연구'가 무엇인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 복귀해서 그 '진짜 연구'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것이라 정말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시스템과 싸우는데 지쳐버렸고, 그것이 불가능한 내 욕심일 뿐이었음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 내가 맛보았던 그 연구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 '진짜 연구'를 하고 싶어서 2014년 3월 세 번째 독일을 찾아왔다. 어느새 1년반이 지났고 뮌헨공대를 거쳐 본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지금 허락된 이 시간이 너무 귀하다는걸 알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된 연구결과는 하루 업무시간 중 90~95%를 논문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6개월 이상 지속해야 가능하다라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독일에 살면서 힘든 점도 포기해야 하는것도 참 많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제대로 연구를 하는 것인지를 잘 알게된 지금, 한국행을 택한다는 것은 '진짜 연구'를 포기하고 다시 '가짜 연구'를 해야 하는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갈수록 젊은 학생들에 비해 내 연구 역량이 떨어져감을 느끼지만, 아직은 내가 연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독일 학생들은 이렇게 3년을 연구하고 박사를 따는데, 나도 그들과 경쟁하려면 이렇게 최소 2년은 더 해봐야 스스로 진짜 박사임을 인정할 수 있을것 같다.

난 아직은 '연구'가 아닌 '일'만 배운 가짜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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