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석사 연구

7:06 AM

ICRA 와 IROS. 로봇학계를 대표하는 두 개의 가장 큰 세계적인 로봇학회이다.
겨울과 가을 일년에 한 차례씩 있는 두 학회는 로봇 기술의 세계적인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학습의 장이며, 세계적인 로봇 학자들의 교류의 장이다.

ICRA 2016 논문 데드라인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 즈음하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로봇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가장 긴장되고 바쁜 시기를 맞이하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제출하자' 라는 마음으로 또 다시 도전하는 몇 년 이상 경력되는 연구자들도 있을 것이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삼수끝에 2013년도 ICRA에 처음으로 논문을 개제했었다. 그 당시 벌써 박사 5년차.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ICRA나 IROS에 논문을 냈다 하면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낸 것인양 알아주지만, 처음 그 학회에 참석한 나는 많은 발표자들이 갓 석사를 졸업한 학생들이나 박사 1,2년차임을 알고는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자책했던 기억이 난다.

졸업 후, 독일에서 석사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 자책이 좀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석사 연구를 2년이나 하고도 ICRA나 IROS 논문은 제출해 보지도 못하고, 국내학회나 좀 권위가 떨어지는 국제학회 논문으로 만족하지만, 이곳에서는 성실히 석사 과정을 수행한 학생이라면 ICRA나 IROS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거의 합격을 한다. 그래서 좀 일찍 낸 학생들은 석사과정 중에 또는 박사 1년차때 1저자 ICRA/IROS 논문을 가지게 된다.

내가 뮌헨공대에서 지도한 석사 학생은 IROS 2015에 합격하였고, 이번 본대학에서 지도중인 석사 학생은 ICRA 2016에 제출 준비 중이다. 한국과 독일 두 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본 경험상, 이는 독일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보다 더 우수해서도 아니요, 영어를 더 잘해서도 아니다. (IROS 2015에 합격한 학생은 영어를 독어보다 더 못하는 중국 학생이다). 오히려 많은 한국 학생들이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더 똑똑하다.

이곳 학생들이 (나와 비교하여 볼때) 5년이나 먼저 좋은 논문 성과를 내는 이유는 그만큼 연구지도를 잘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충분히 성실한 학생은 석사연구로 ICRA/IROS 논문을 여러편 낼 수 있는 수준의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박사과정때 스스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된다.

간단히 그 시스템을 소개해 보자. (한국에 있는 석사생들은 '분노' 주의). 먼저 석사학생들은 1년반(3학기)동안 연구실 소속이 아닌 학생으로 코스웍과 공부에만 집중한다. (아, 학비는 물론 무료이다.) 그 중 1,2학기는 렉쳐 및 실습 중심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고, 3학기는 세미나 중심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세미나는 먼저 각 연구실 박사과정 학생들이 석사 학생들 앞에서 주제발표를 한다. 그리고 석사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그 주제를 설계한 박사과정 학생의 지도를 받게 된다.

올바로 된 박사과정 학생이라면, 이때부터 석사과정 학생이 작성할 논문을 설계한다. 그리고, Related work 에 해당될 핵심 논문들을 지도학생에게 주고 한 학기동안 관련 이론을 공부하고 발표하게 한다. 물론 8page 상당의 리포트도 논문형식에 맞게 작성하게 한다. 이때 공부한 지식은 석사연구를 하는데 바탕이 되는것은 물론 이때 작성한 리포트는 석사논문의 한 챕터를 차지하게 된다.

마지막 4학기는 석사논문 연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역시 박사 학생들이 먼저 주제발표를 하고 석사학생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주제를 결정한다. 큰 문제가 없는 한 석사학생은 세미나 지도를 받은 박사학생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석사논문 주제발표때 박사학생은 구체적인 연구목표와 기대하는 결과를 명시하게 된다. 이는 석사논문을 평가하는 요건이 되기도 함과 동시에, 석사 학생들은 연구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게 된다.

여기까지 왔으면 석사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벌써 ICRA/IROS 논문의 1. introduction, 2. related works, 5. conclusion 에 해당되는 내용은 결정이 된 상태이다. 물론 이를 실제로 작성해 가는건 석사학생의 몫이지만, 경험있는 박사학생의 지도로 논문이 실리기에 가장 중요한 항목인 Theoretical contribution, Originality of concepts, Relevance to field 등은 채워진 셈이다. 석사학생이 한학기동안 수행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세미나 수업때 이미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의미있는 결과를 내고, 논문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한국과 비교해 보자면, 석사논문 프로포잘에 해당하는 내용을 경험있는 박사과정 학생이 대신 해주는 셈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 많은 석사학생들의 어이없는 프로포잘을 비판하고 이를 삽질하며 수정하는데 석사과정 2년을 보내는것 보다, 체계적인 석사과정 교육 시스템 안에서 그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여 적절한 지도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나 싶다. 나 스스로의 경험도 그렇지만, 석사학생 스스로 준비한 석사논문 프로포잘이 가장 어이없는 발표였음을 많이 봐왔다.

또 하나, 이렇게 지도를 받고 제출한 ICRA/IROS 학회에 참석한 학생은 여러 다른 연구자들의 발표와 교류를 통해서 이제서야 연구 주제를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 그리고 박사과정때는 스스로 연구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석사과정때 이런 지도를 통해 독립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박사과정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많은 분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일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지도를 받는 석사학생은 정말 럭키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많은 석사학생들이 '우리 교수님은 연구지도를 안해죠' 라고 불평한다. 하지만 교수가 수 많은 석사학생들을 이런 식으로 밀착 지도하는건 불가능하고, 독일에서도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한국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무책임한 것인가? 굳이 여러 말 안해도 박사과정 학생들은 '그냥 불쌍하다.. ㅜㅜ' 뭐라하지 말자..

이게 바로 시스템의 힘이다. 독일의 이런 석사과정 시스템 안에서는 석사때 ICRA/IROS에 논문을 못내는게 예외적인 상황이다. 한국은 그 반대이지 않나?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그 안에서 성실히 하지 못한 개인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석사 프로포잘때 발표하는 학생들 못한다고 비판하지 말자. 밀착지도를 받은게 아니라면 못하는게 당연하다. 설마 군대에서 처럼 '나도 까였으니 너도 까자. 까임을 받아야 좀 정신 차리드라' 라는 미개한 생각을 가진건 아니길 바래본다.

모든 책임은 아래로 미끄러뜨리는 우리나라 시스템 구조상, 석사학생들은 박사급에서나 가능한 논문 주제 선정, 포닥 및 교수급에서나 가능한 프로젝트 프로포잘 작업까지 맡기 일수다. 그들이 할 수 없는데 헛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대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주는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여러 이익계층이 상충하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바꾸기는 어려울지라도, 순수한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대학원의 구조를 바꾸는게 정말 불가능할까? (open question to discuss)

이제 결론이다. 많은 한국의 대학원생처럼 나 역시 이런 시스템을 경험하지 못했다. 프로젝트에서 하는 일만이 연구의 전부인양 열심히 했고, 그 결과로 부랴부랴 데드라인 2주전부터 논문을 써서 내고 떨어지기 일수였다. ICRA/IROS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으로 보여서 떨어진 논문은 그냥 실어주는 더 낮은 학회에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CRA/IROS 는 매번 떨어지더라도 내라고 권유하고 싶다. 한 3년 떨어지면서 피드백을 받다보면,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늦게라도 (난 5년을) 도달하긴 한다. 하지만 아예 내지 않는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시스템이 나쁘다고 그 안에 있는 개인들마저 포기해버린다면 나중에 그 시스템을 비판할 자격도 없지 않겠는가.

원본게시일: 2015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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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재미있으신 말씀을 하시네요. 전 반대로 너무 지나치게 코스웍 중심이고 그것도 코스웍이 전공중심이 아닌 개론중심이라서 지나치게 광범위한 부분이 퀄러티 부분에서는 별로 좋지가 않다고 느꼈는데요. 오히려 독일 석사는 모교출신 석사생들 만 한번더 복습을 하고 다듬고 졸업한다는 개념으로 알고있거든요. 연구를 중심으로 한다면 물론 전공마다 다르고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때로는 그 연구와 연관된 코스웍중심 즉 졸업논문과 연관된 코스웍이 중심이 되는게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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